CAU FINE ART
서양화전공
이수지_Lee soo ji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들은 조각으로 남아 기억 속에 존재한다. 기억에는 감정이 스며 있다. 나는 그런 기억들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하여 화면에 담아낸다.
나는 과거의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다시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지나간 기억에 충실하기 위해 기억을 상기하고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먼저 선명한 기억을 불러오기 위한 방편으로 사진을 사용한다. 사진으로 포착된 과거의 또렷한 순간과, 불완전한 기억을 통해 회상하는 흐릿한 순간을 중첩하고 재조합 한다. 매체의 도움 없이 돌아보는 기억은 왜곡되고 불안하다. 나의 그림은 분명 누군가의 흔한 경험이지만 불완전한 이미지로 재현됨으로써 생소하게 느껴진다.
불안정한 과거의 기억은 회화의 물성을 통해 표현된다. 흐르는 듯한 회화적 표현은 물체의 단단함을 없애고 갇혀 있는 형상을 해방한다. 자유로운 붓터치는 캔버스 위에서 그려지고 중첩되며 때로는 흘러내리면서 흔적으로 남겨진다. 이는 사사로운 주변의 순간들이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과 같다. 실재했던 현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지만, 회화에서 재구성된 화면은 결국 상상의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존재하지 않는 유동적인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잊혀진 공간과 상황, 감정들은 다시 떠오르는 순간 의미를 갖는다. 잊혀지는 기억들에 애도를 표하며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페인팅을 통해 의미를 담아내고자 한다. 기억 속에서 추출된 다양한 이미지들로 재구성된 화면은 불안정한 현재의 나를 드러내는 듯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불안정한 정서를 마주하며 잠재적으로는 미래를 향한 긍정적 자세를 지닐 수 있기를 바란다.
<낯선 여행>, 2023, 캔버스에 유화, 145.4×97cm
<춤을 추는 나무>, 2023, 캔버스에 유화, 145.3×111.5cm
<떠오르는 바다의 왼쪽>, 2023, 캔버스에 유화, 31.8 × 31.8cm
<떠오르는 바다의 오른쪽>, 2023, 캔버스에 유화, 31.8 × 31.8cm
<심연을 들여다볼 때는 심연 또한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3, 캔버스에 유화, 20.3 × 20.6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