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U FINE ART
서양화전공
이승현_Lee seung hyun
인간은 이중적이다. 나도, 내가 그리는 ‘아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처음 소재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좋아하는 많은 것 중 왜 아이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생겼고, 아이에게 이중성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아이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아이는 연약하다. 성인의 도움 없이는 밥 먹는 것도 힘들고, 외부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세상의 어려움에 쉽게 지치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창의적이고 한계가 없어 재미있는 상상력을 품고 있다. 그리고 아이는 순수하다.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아 무엇이든지 쉽게 흡수한다. 하지만 순수하기 때문에 잔인하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개미를 죽이는 일에 거리낌 없다. 성인이 되어서는 개미를 일부러 밟으러 다니고, 비둘기를 잡겠다고 쫓아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놀이의 일부다.
아이는 한 사람의 역할을 하지 못하니 덜 떨어지고 생명을 함부로 여기니 이기적인 존재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그저 연약하고 순수한 속성을 가졌을 뿐이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때때로 밝지만 우울하고, 소극적이지만 적극적인 사람이다. 우리 모두 이중적인 존재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그림 속에서 영원히 계속된다. 그들의 순수함은 아름답고, 불쾌하며, 때로는 우울하다. 그 복합적인 세계를 ‘아이ng’라고 이름 붙이고, 아이였지만 더는 아이가 아닌 나를 표현한다. 그림 속 아이들은 즐겁게 놀고 동시에 우울하다. 아이였던 시절을 겪었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행복한 어린 시절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연약한 생명에게 때로는 작은 사건에도 불안전하다.
나무와 사슴은 오래전부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우리의 신이자 친구, 보호자였으며, 신비로운 세계에서 아이들에게도 그러한 존재다. 오래 전부터 인간은 그들을 신성하게 여김으로써 관심을 주었지만, 아동의 권리와 보호에 관한 인식은 한참 뒤에 생겨났다. 그래서 성숙한 존재의 도움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미성숙하고 연약한 존재는 인간 대신 신들의 품속에서 자라난다. 그들만의 놀이는 때로는 기괴해서 성인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마저 신들은 모두 포용한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은 순수함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연약하고 순수한 세계는 끊임없이 진행된다[ing].
<꿈의 나라>, 2023, 캔버스에 수용성 유채, 90. 9 × 65.1cm
<여행>, 2023, 캔버스에 수용성 유채, 지름 46cm,
<악몽>, 2023, 캔버스에 수용성 유채, 45.5 ×45.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