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U FINE ART
서양화전공
이예진_Lee ye jin
건물은 일종의 심리학적 틀처럼 우리를 지탱하여,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유지해주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내부에 필요한 것을 표현해주는 물질적 형태들을 주위에 배치한다. 벽지, 벤치, 그림, 거리가 우리의 진정한 자아의 실종을 막아주기를 기대한다.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나의 작업은 사라진 할머니 댁에 대한 경험에서 시작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간 뒤, 몇 년 후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위해 만든 사진첩에는 어린 아빠와 젊은 할머니의 모습과 모든 사진의 배경엔 지금은 사라진 집이 등장했다. 사라진 집과 사라지고 있는 할머니의 기억의 관계를 집과 개인의 관계로 확장했다.
집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 중에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감정’이다. 집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집구석에 있는 무거운 나무로 만든 침대에선 안정감을, 창문을 막는 주름진 커튼에서는 하루가 끝났다는 신남과 벽 높이 줄지어 걸려있는 조상님들의 사진을 통해서 진지한 감정이 차오른다. 각자가 각 공간에 느끼는 감정들은 다 다를 것이다.
집은 개인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공간이고, 이 공간에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생활한다. 벽지, 탁자 등의 형태로 가시화된 자아는 꾸준히 집 안에서 수를 늘려가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한 개인 안에 다시 쌓인다. 그렇게 오랜 시간 집은 그 자체로 기묘한 온전함을 주고, 기억의 형태로 남아 떠난 후에도 개인의 삶의 뼈대가 된다.
건물에 있어선 기둥, 천장, 벽이 건물의 모양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뼈대이다. 건물의 뼈대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선은 캔버스 위에서 벽과 합쳐지기도 그 자체로 존재하기도 한다. 정확한 수치의 선과 각도는 감정적인 부분의 극대화로 자유로워진다. 휘몰아치는 바깥 자극들에 자신을 온전하게 바라보지 못할 때, 집은 존재만으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개인의 감정의 반영인 집과 개인 사이에 일어나는 반응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집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 정서적 개념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공전>, 2023, 캔버스에 유화, 145.5×112.1cm
<연기>, 2023, 캔버스에 유화, 116.8×91cm
<거리>, 2023, 복합매체, 130.3×130.3cm